세로무늬키위

세로무늬키위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관계

juniqoo 2025. 11. 25. 02:41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히 환경과 사용자 사이의 일방적인 구조가 아닙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은 자연 속 생명체와 공존과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해왔고, 

때로는 특정 동물 한 종이 민족의 상징이자 신화의 주인공, 그리고 영혼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뉴질랜드의 토착 원주민인 마오리족(Māori)에게 있어, 세로무늬키위(Striped Kiwi)는 단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조상과 연결되는 영적 존재이자, 공동체의 전통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특별한 생명체입니다.

마오리족은 자연을 생명 그 자체로 여기며, 

모든 동물과 식물에는 고유의 ‘마나(mana)’와 ‘타푸(tapu)’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마나란 존재의 영적인 힘이며, 타푸는 신성함을 뜻하는 개념입니다. 

키위는 그 속성상 매우 은밀하고 조용한 존재이기에, 조상의 영혼이 머무는 동물로 여겨졌고, 

그 존재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세로무늬키위는 일반 키위종보다 더 드물고 인간과의 접점이 적기 때문에 

더 강력한 신성성을 부여받은 종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로무늬키위와 마오리족이 맺어온 영적·문화적 관계, 전통 지식 속에 담긴 자연관과 보전의 지혜, 

그리고 현대에 들어 더욱 활발해진 마오리족의 생태 보전 참여 활동을 중심으로, 

단순한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선 깊이 있는 공존의 형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세로무늬키위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관계

 

1. 신화와 전통 속 세로무늬키위의 영적 상징성

마오리족은 고대로부터 동물과 식물을 단지 자원으로 보지 않고, 조상과 신이 깃든 존재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키위는 그 모습과 생활 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다른 어떤 새와도 쉽게 비교되지 않았습니다. 

날지 못하고 땅을 파고 사는 이 조류는 마오리 신화 속에서 지하 세계와 조상을 연결하는 ‘메신저’로 자주 등장합니다.

조상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새로 인식되며, 죽은 이의 영혼이 키위의 몸을 통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고 믿었습니다.

세로무늬키위는 그중에서도 특히 ‘타아네 마후타(Tāne Mahuta)’의 창조물로 여겨졌습니다. 

타아네 마후타는 마오리 신화 속 숲과 생명의 신으로, 숲의 모든 동식물을 지키는 수호자로 묘사됩니다. 

세로무늬키위는 야행성과 은밀한 생활 방식으로 인해 그 신성한 영역에서 직접 보호받는 존재로 간주되었으며, 

이 때문에 함부로 다가가거나 포획하는 것이 철저히 금기시되었습니다. 

마오리 전통에서는 이런 금기를 ‘타푸(tapu)’라 하며, 이를 어기는 행위는 공동체 전체에 불운을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 인식은 키위, 특히 세로무늬키위가 단순히 야생 동물이 아니라 

정체성, 신앙, 조상과의 연결 고리로서의 지위를 지닌 특별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마오리 공동체에서는 특정 지역의 키위를 ‘조상의 수호자’로 여겨 보호하고 있으며, 

키위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조상의 메시지를 듣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는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에서 깊은 경외심과 존중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2. 마오리 전통 생태지식 속 보전의 지혜

마오리족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을 관찰하고 그 흐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생태지식을 쌓아왔습니다. 

이를 마오리어로 ‘마타우랑가 마오리(Mātauranga Māori)’라고 하며, 이 지식은 단순한 민간 전승이 아닌, 

정교하고 체계적인 생태적 관찰과 경험에 기반한 지식체계입니다. 

키위에 관한 정보 역시 이 전통 지식 속에 오랜 세월 축적되어 전해져 왔습니다.

예를 들어, 마오리족은 키위의 울음소리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울음소리의 간격, 길이, 방향을 분석하여 번식 시기와 이동 경로를 예측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또한 어떤 지역에 키위가 자주 출몰한다면, 

그 지역의 토양 상태나 생태적 건강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대 생태학의 생물지표종 개념과 유사한 방식으로, 

마오리족이 실제로 생태계의 균형을 관찰하고 보호하는 데 활용했던 전통 지식입니다.

이와 같은 지식은 세로무늬키위 보전에도 큰 자산이 됩니다. 

과학적 조사로는 한계가 있는 지역별 키위 서식지 정보를 마오리족 원로들의 기억과 경험으로 보완하고 있으며, 

보호구역 지정에도 이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뉴질랜드 정부는 공식적으로 마오리 공동체와 협력하여 

전통 생태지식을 보전 정책에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이는 전통과 과학이 만나는 지속 가능한 보전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3. 현대 보전 활동에서의 마오리족 참여

오늘날 뉴질랜드 전역에서는 다양한 보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마오리족의 역할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문화적 감수성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 보전 현장의 주요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세로무늬키위 보호 활동에서 마오리 공동체의 참여는 매우 적극적이고 실질적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이위 키위 프로젝트(Iwi Kiwi Project)’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마오리 부족 공동체(iwi)가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보전 프로그램으로, 

세로무늬키위의 서식지 조성, 포식자 통제, 어린 키위 사육 및 방사까지 전 과정에 마오리 주민들이 직접 참여합니다. 

이 과정은 단지 생물 보호를 넘어 문화적 자긍심 회복과 공동체 역량 강화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로무늬키위를 지키는 일이 곧 공동체의 전통을 지키는 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마오리족이 중심이 되어 키위 보호구역을 관리하고, 

외부 방문객에게 해설을 제공하며,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직접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 세대에게 전통 지식과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동시에 교육함으로써,

미래 세대의 자연 인식을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세로무늬키위와 마오리족의 관계는 단지 한 조류와 한 민족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깊이 있는 증거이며, 

우리가 생명을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마오리족은 키위를 신성한 존재로 인식하며, 그 울음소리 속에서 조상의 목소리를 듣고, 

그 발자취 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읽어왔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생태 위기 속에서 가장 잃지 말아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오리족은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의 보전 활동에서도 중심적 주체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의 참여는 단지 문화적 상징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연속성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현재 수많은 세로무늬키위를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얻는 가장 큰 교훈은, 보전은 과학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 안에는 문화와 정체성, 기억과 신념이 함께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로무늬키위를 보호하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이 자연과 어떤 존재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마오리족이 오랫동안 품어온 그 조용한 신념 속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